미국에 살면서 누리는 장점 중 하나는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한국 문화를 새롭게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방식에서 두 문화의 차이는 두드러집니다. 집단주의 성격이 강한 한국 문화에서는 자기 소개를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을 소개합니다. 어디에 사는지, 몇 살인지, 어떤 학교/직장에 다니는지 등, 집단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 규정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정말 자기를 소개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취미는 무엇인지, 자신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하지요.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의 자기 소개는 ‘자기가 가진 다른 사람과 비슷한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미국 사람의 자기 소개는 ‘자기가 남들과 다른 점’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집단주의적 한국 문화가 배움의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 열린 G20 세계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특별히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준 한국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한국 기자들 중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오바마가 계면쩍어 할 정도의 정적이 몇 분간 흘렀고, 결국 ‘아시아를 대표해 질문해 보겠다’던 중국인 기자에게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 질문은 집단의 평안을 깨는 행위입니다.
“Don’t rock the boat” 라는 말처럼 멀쩡히 잘 가고 있는 배를 뒤흔드는 행위가 바로 질문입니다.
저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A cradle Methodist’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저는 평생을 감리교인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에 대해서 또 감리교 신학에 대해서 의심하고 질문하는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저는 여전히 질문하고 고민하며 삽니다. 제가 배운대로 들은대로 세상이 다 굴러가지 않더군요. 믿음 갖고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끔찍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하나님이 진정 선하신가 혹은 전능하신가 의심하게 하는 일이 실제 있더군요.
감사한 것은 제 질문과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신앙공동체와 믿음의 멘토/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민 중에도 튕겨나가거나 엇나가지 않고 교회에 붙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질문으로 배를 뒤흔들어봐도 괜찮은, 공동체라는 안전한 항구가 제 삶에 늘 있었습니다.
경희대학교 김상균 교수는 질문력을 세 부분으로 정의합니다: “마음 속에 질문을 품는 힘, 품은 질문을 세상으로 뱉어내는 힘, 뱉어낸 질문에 담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그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카고예수사랑교회가 질문력 충만한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신앙의 고민을 정죄받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 답이 없는 것 같은 상태를 견디게 도와주는 동행 공동체, 질문과 고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굳건한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성경공부반 깨알 광고도 드립니다. 성경과 신앙에 대한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있다네요. 모두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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